마지막 순간까지 동우인입니다
동우팜투테이블 김덕실 생산본부장
김덕실 생산본부장은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생산한다”는 모토로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400여 명의 생산직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현장을 진두지휘 해왔다.
생산뿐만 아니라 환경, 설비, 물류까지 동우팜투테이블의 바른닭고기 중심에 서 있는 김덕실 생산본부장과의 인터뷰이다.

시간당 1만6천수 닭고기를 생산하는 동우팜투테이블 생산현장. 직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 가운데 하얀 위생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닭고기 상태를 확인하는
김덕실 생산본부장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난다.
한결같이 현장을 지켜온 20여 년의 세월, 2만여의 시간. 동우팜투테이블에서 오롯이 보낸 시간의 흔적이다.
처음 입사하셨을 때가 궁금합니다.
1996년 8월 1일, 전기기사 안전관리 책임자로 입사했습니다.
회장님께서 면접 보셨을 때가 제 나이 35살 무렵인데,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동우에서 하겠습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렇게 동우팜투테이블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마지막까지 동우에서 하겠습니다”란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가 양모피 가공업체인데 문을 닫아야 했어요. 동물 보호에 대한 대중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대와 맞지 않았던 거죠.
반면 동우는 우리가 매일 먹는 먹거리를 다루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계속 근무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항상 그 말을 품고 살았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전기 안전관리 담당자에서 어떻게 생산본부장을 하게되셨나요?
모든 기계설비는 전기로 작동되기 때문에 전기를 알면 도계 운영, 메커니즘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어요.
전기뿐만 아니라 설비, 냉동까지 전반적인 일을 소화하면서 생산으로 오게 됐습니다.
현재 닭고기 업계의 생산 기술이 상향 평준화 된 데에는 동우팜투테이블의 선진 설비 시스템이 큰 영향을 끼쳐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0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에어칠링 냉각, 네덜란드 스톡사의 도계 설비는 당시로써는 가장 좋은 설비였습니다. 좋은 설비 덕을 톡톡히 본 셈이죠.
회장님이 좋은 제품은 좋은설비에 달렸다는 마인드셔서 당시에는 제일 앞서갔고,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 같습니다.
닭고기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선하고 깨끗한 닭고기를 만들기 위한 식품안전 관리다.
매일 아침 7시 30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기 전 도축검사 공영화에 따라 동물위생시험소 검사관 3명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검사원 6명의 위생 검사가 시작된다.
닭이 머무는 계류장, 도계장, 포장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장에서 작업 전 위생검사에 적합 판정을 받고 나서야 아침 8시부터 비로소 공장이 본격 가동된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철저한 위생 관리는 소비자에게 전해지기까지 계속 된다.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닭고기 가공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위생적인 내장 적출과 냉각온도(심부 온도)입니다.
내장이 터지면 오염물질이 남으니까 한 번에 제대로 내장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고, 그 이후 냉각해서 닭고기의 냉각온도를 5℃ 이하로 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소비자에게 전해지기까지 2℃ 이하로 온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닭고기는 섬세한 공정을 필요로 한다. 닭의 크기나 상태가 각각 달라서 꼼꼼한 수작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닭고기 내장 적출 상태를 확인 후 설비 세팅 값 조정을 수없이 반복 하면서 최적의 결과를 끌어내고,
중요 공정마다 미생물 모니터링을 하여 7~8개소에 세척장치를 설비하는 등 생산팀의 노력은 동우팜투테이블의 닭고기 품질을 최상으로 이끌어왔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뽑는다면?
첫째, 좋은 원재료 둘째는 좋은 설비죠. 마지막으로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의 운영능력과 책임의식이 중요하고요.
2000년 당시, 도계 라인을 증설했을 때 지하수가 부족해서 작업을 못 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그때 급수차를 빌려와서 물을 대고, 직원들이 지하수를 파서 관로를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 힘들이 모여 지금의 동우팜투테이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웠을 때는 언제인가요?
한 번은 중량별로 닭고기를 선별하는 라인이 고장 나서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닭고기는 유통기한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치명타거든요. 시간당 1만6천 수의 닭이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겠어요.
해외 설비다 보니 수리하려면 일주일 이상 걸리니까 어떡하든 국내에서 고치려고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이틀 만에 고쳤지만, 거래처 납기일도 못 맞췄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득합니다.
김덕실 생산본부장은 ‘동우인답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극복해왔다”는 점을 꼽는다.
아무런 노하우가 없던 시절, 최첨단 설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마음고생을 했지만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고,
2003년 갑자기 나타난 AI(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닭고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극에 달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전단지를 돌렸던 시간들.
그런 과정을 거쳐 2010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Forbes로부터 ‘아시아 200대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가,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동우팜투테이블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20년 근속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일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으로 맡은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해왔던 거 같아요. 책임감,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봐야죠.
무엇보다도 힘들고 어려울 때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끌어주신 사장님과 함께한 동료들 덕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보기보다는 깐깐합니다.(웃음)
돌아보면 원칙을 고수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동료들에게는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함께 해준 직원들, 가족들한테도 고맙죠.
입사 당시 첫애가 7살이었는데, 어린이날에 제때 놀아준 적이 없어요. 한창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 잘 못해 준 게 미안하죠.
저 대신 아버지 노릇 해준 집사람한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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